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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세월을 기록하는 눈, 나, 카메라의 역사

hanlee.com 2006. 12. 5. 13:09


세월을 기록하는 눈, 나, 카메라의 역사



지금은 누구나 쉽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의 사진과 카메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은 눈앞의 풍경을 이미지화시키는 동시에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하나로 집약되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사진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방안을 어둡게 하고 한쪽 벽면에 바늘만큼 작은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그 구멍을 통해 들어와 방 안쪽 벽면에 거꾸로 된 형태로 비쳐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실제의 모습을 그림처럼 볼 수 있게 만든 장치를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고 하는데,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란 의미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적인 카메라가 개발되기 전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화가나 고고학자들에 의해 외부의 화상(畵像)을 정확히 옮겨 그리는 도구로 발전하여 텐트형, 테이블형, 이동형 등으로 다채롭게 개발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빛이 일으키는 화학 반응, 즉 광화학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1816년에는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phore Ni?pce)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포착한 화면을 역사상 최초로 감광지 위에 담아 내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니엡스와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했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 Daguere)는 금속판에 포착한 이 정교한 이미지에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역사의 맨 첫 장
한편 독자적으로 사진을 연구하던 영국의 폭스 탤벗(William Henry Fox Talbot)은 종이판 위에 음화를 포착하는 방식을 통해 여러 장의 사진을 복제해 내는 칼로타입(Calotype)을 개발했다. 이 두 가지 사진술이 각각 지니고 있던 정교함과 복제가능성이라는 장점을 결합해 낸 것이 1851년 영국의 아처(F. Scott Archer)가 발명한 습판 사진법, 즉 콜로디온(Collodion) 사진법이었다. 그러나 습판 사진은 판에 바른 유제가 마르기 전에 인화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으므로 사진가들이 카메라는 물론 암실과 화학 약품을 모두 갖고 다녀야 하는 어마어마한 불편함이 있었다. 장비와 약품의 무게가 50킬로그램에 육박했다고 하니, 그 고생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것이 건판 사진이었다. 건판 사진술은 젤라틴 유제를 바른 휴대용 필름의 선구적인 형태로서 휴대용 카메라의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의 이스트먼코닥사는 이러한 젤라틴 건판 사진술을 대중화시켜 규격화된 롤필름과 휴대용 카메라를 만들어 유통시킨 최초의 회사였다. 1888년, 100매 길이의 롤필름용 박스형 핸드카메라 코닥(Kodak) 이후로 대표적인 박스카메라 불릿(Bullet), 그리고 단 1달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라우니(Brownie) 등을 연달아 흥행시킨 이 회사가 내건 슬로건은 “셔터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였다.
이후로 많은 회사들이 독자적인 모델을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사용하는 필름 크기에 따라 35밀리 소형, 120밀리 중형, 대형으로 나눈다. 뷰 파인더 방식에 따라 보는 상과 찍히는 상이 조금 다른 레인지 파인더, 보는 상을 거울로 반사시켜 펜타프리즘이라는 별도의 장치로 다시 반사하여 보여 주는 일안 리플렉스, 보이는 상과 찍히는 상을 각각 인식하는 2개의 렌즈를 장착한 이안 리플렉스, 그리고 파인더 스크린에 곧바로 상이 만들어지는 뷰카메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용도에 따라 미처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카메라가 존재해 왔다. 이러한 분류 체계를 갖기 위해 수없이 많은 형태의 실험이 있었고, 생물종의 발달사처럼 진화와 소멸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거듭된 진화
그중에서도 지금의 35밀리 표준 카메라를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독일인 오스카 바르낙(Oscar Barnack)이 설계한 레인지 파인더 방식의 라이카(Leica)였다. 등산가였던 그는 알프스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관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핸드카메라로는 선명하고 정교한 이미지를 담아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투 군장처럼 무거운 장비를 이끌고 알프스를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1913년, 그는 ‘최초, 기원’이라는 뜻을 가진 우르(Ur)를 라이츠(Leitz)사에서 만든 카메라의 이름인 라이카 앞에 붙인 우르 라이카를 개발했다. 이 카메라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크게 확대해도 좋을 만큼 정밀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31개의 연구용 라이카가 만들어진 뒤 1925년, 드디어 오늘날 표준 카메라의 선구가 된 라이카 A가 시판되었다.



한편 오늘날 롤라이사의 전신인 프랑케 하이데케(Franke & Heidecke)사가 1929년에 선보인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는, 보이는 화면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보도사진가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후 1932년 자이스이콘(Zeiss Icon)사가 개발한 ‘콘탁스 Ⅰ’은 라이카가 지닌 많은 장점에 덧붙여 셔터 속도를 1000분의 1초까지 단축했다. 급변하는 세계사를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던 보도사진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1947년에는 최초의 즉석 카메라인 폴라로이드 95가 출시되었고, 1959년에는 외부 연동의 셀렌 광전자 노출계와 투명 반사 거울 등 당시로선 최신의 매커니즘을 갖춘 니콘 F가 출시되기 시작했다. 1969년 달 착륙에 성공한 중형 카메라 핫셀블라드(Hassel-blad)는 지금도 미항공우주국과 함께 우주에서의 사진 촬영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필름 대신 플로피디스크를 이미지의 저장 매체로 사용한 소니(Sony)사의 마비카(Mavica)가 출시된 것은 1981년으로,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디지털 카메라의 시초였다. 또한 1986년 니콘이 개발한 F501은 처음으로 자동 초첨 기능을 갖춘 카메라였는데, 지금이야 당연한 기술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온 아날로그 카메라는 휴대폰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다. 값비싼 희귀종으로 소장 가치가 높은 카메라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불편한 조작법과 비싼 필름값을 감수하고도 낡은 아날로그 카메라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들이 클래식 카메라에 이토록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누군가의 소중한 삶을 뒤쫓아 그 모습을 기록해 낸 따뜻함이 세월을 고스란히 감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어떤 형상을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이 지닌 빛나는 순간과 소중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의미를 담아 내는 사진. 어려움을 무릅쓰고도 기어이 한 생을 살아 내듯 낡은 카메라의 불편함을 견뎌 내는 것, 이를 통해 나 자신과 마주하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진정성을 얻는 것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 내는 한 방식이다.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저금통장통

출처 : Tong - 해결사님의 우리 사는 세상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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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롤라이 플렉스는 모양이 이뻐서 굉장히 갖고 싶긴 했는데,
이 역사를 보다보니 폴라로이드 초기 생산품이 갖고 싶어졌다.

기계적인 느낌이 좋다.

//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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